
아트 퓨쳐와 인공지능: 안타고니스트로서의 인간의 신체

류필립
인간은 주인공(protagonist)의 지위를 잃어 가고 있지 않은가? 이전에 놓여보지 못한 위치에 놓인 대적자(antagonist)로서의 인간의 신체는 과연 앞으로 어떤 새로운 상황을 만들어 낼 것인가?
아트 퓨처Art Futures와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인간 신체의 조연화 및 안타고니스트화가 진행된 미래에 대해 생각해보고, 그 컨셉이 적용된 공연 작품인 경우의 도시 (A Stochastic City)의 제작 과정과 컨셉을 설명하는 목적으로 작성된 이 문서는 2025년 성수에서 진행된 '유니크 플레이'에서의 아티스트 토크를 기반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현대 예술과 기술의 융합은 끊임없이 새로운 경계를 탐색하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AI)의 발전은 인간의 신체성과 디지털 기술 사이의 관계를 새롭게 정의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미래를 상상하는 작업들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
미래를 예측하는 단순히 미래를 예상하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 맞히기 위한 것이 아니다. 19세기 후반, 줄 베른(Jules Verne)의 『20세기의 파리』는 1960년대 기술을 놀랍도록 정확하게 묘사하며, 자동화, 인터넷 대중교통 시스템, 도시 인프라의 발전 등을 예견했다. 그러나그 내용이 모두 정확한 예측이었는가? 아니다. 그렇다면 틀린 부분은 의미가 없는 것인가? 오히려 현실과 틀린 부분들이 장르에 상관없이 현대 예술에 더 큰 영감을 준다는 것을 볼 때, 나는 그것도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호모 사피엔스를 가장 그답게 만들어주는 능력 중에 하나는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래서 미래학Futures Study과 같은 분야들은 그 자체로 유전자적 아우라를 가진다. 미래학적 예술이라고 할 수 있는 아트 퓨처Art Futures는 예술을 통해 미래를 실험하고, 그 과정에서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공상과학소설Science Fiction에서 많이 사용하는 기법 중에 하나가 -punk를 세계관에 적용하는 것이다. 이는 과거의 구(old / outdated) 기술이 다른 기술로 대체되지 않고 그대로 주류 기술로 유지되면서 발전했으면 어떻게 될까를 골자로 한다. -punk의 예제들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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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톰펑크Atompunk: 1950~60년대의 무주의한 원자력 기술이 유지된 세계관의 장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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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퓨처리즘Asiafuturism: 아시아적 요소를 서구의 스테레오타입과 결합하여 미래를 조망하는 장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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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락펑크Clockpunk: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기계 태엽기술이 발전한 대체 역사적 미래를 그리는 장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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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세트펑크Cassettepunk: 1970~80년대 저장장치로 주로 쓰인 테이프 기술과 그 분위기가 유지된 세계관의 장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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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펑크 AI-punk: 작가 류필립의 정의상으로는, 1950년대-2010년대 중반까지의 극초기 AI 기술(또는 2010년대 후반 또는 이후의 초기 AI기술)의 장단점과 사회적 기조가 미래 어느 시점까지 그대로 발전했다는 것을 가정한 세계관의 장르
가 있다.




시계방향으로 각각 아톰펑크, 아시아퓨쳐리즘, 카세트펑크, 클락펑크를 묘사한 일러스트

(좌) 미래 관련의 분야 및 장르들을 정리한 도식.
(좌 하단) 미래로 갈수록 실제로 가능해지는 것과 가능할 것 같은 상상의 범위가 늘어나는 것을 묘사한 도식.
(우) 베르그송의 Cone of Memory
Credit: Montgomery / Bergson
‘가능한 미래’에 대한 상상은 학문적으로도 정립되기에 이르는데, 영국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용어인 스페큘레이티브 디자인Speculative design 및 파생 용어들이 대표적이다.
미래학Futures Study은 미래를 단지 예측하고 맞추는것이 아니라 미래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여러 가설을 세우고 방향을 제시하는데 중점을 두는 분야이고, 비교적 실용적인 문제들로 연구 범위를 제한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 특성상 미래를 다루어야 하기 때문에 완전히 검증된 현실적인 이야기만 하지는 않는다. 스페큘레이티브 디자인이란 미래에 필요한 디자인을 미리 해 봄으로써 디자인을 통해 더 나은 방향의 미래를 만들고자 하는 분야이다. 디자인은 범위를 제한하는것과 경계 없이 자유롭게 상상하는 것의 균형을 가져가야 하는 경우가 많다. 어느쪽으로 극단적으로 쏠리면 디자인이 아니게 될 수 있다.
공상과학SF의 경우, 미래학과 약간은 겹치지만 거의 경계 없는 상상 쪽으로 치우쳐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것이 픽션의 역할이기도 하며, 아무래도 SF가 미래를 실용적 관점에서 엄밀하게 예측하는 것 보다는 비주얼이나 엔터테인먼트적인 성격을 강조한다는 것을 나타내었다고 보인다. 하지만 완전히 경계없어도 되는 것은 아니여서, SF에서도 어느정도는 과학적 현실성을 담보하지 못하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아트 퓨쳐Art Futures는 예술을 통해 미래'들'을 미리 상상해보고 방향을 제시하는 분야이다. 미래학에도 아트퓨쳐에도 's'가 붙는 이유는 단일 미래만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가설과 상상의 정립과정에서 다양한 미래들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경계가 거의 없는 일반 예술Art과 다르게 이 분야는 작품에 어느정도의 현실적인 미래의 모습을 담아내려는 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공상과학보다 덜 픽션이고, 스페큘레이티브 디자인보다 조금 더 순수예술Fine Art적인 포지션이라고 생각된다. 그것은 설치물이나 공연 등의 작품을 통해 미래의 문제점에 대해 경고하거나, 미래에 꼭 필요한 가치나 컨셉들을 미리 상상하여 관람객들에게 제시하고 그것을 통해 나은 미래를 위한 담론둘을 형성하는것이 주된 목표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좌 하단의 '미래로 갈수록 실제로 가능해지는 것과 가능할 것 같은 상상의 범위가 늘어나는 것을 묘사한 도식'은 원뿔cone 모양인데, 과거에서 미래의 시간선상에서 어떻게 가능성 이 확장해나가는지 보여주는 도표이다. 가능성의 종류에도 여러가지가 있다. 가장 가운데의 파란색 부분은 probable, ‘많이 가능할 것 같은’ 요소이다. 미래로 갈수록 원의 면적이 넓어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더 먼 미래로 갈수록 ‘Probable 많이 가능할 것 같은’의 범위는 당연히 늘어날 것이다. Plausible그럴듯한, Possible가능한 도 마찬가지로 늘어난다. 예를 들면, 10년 후에는 거의 불가능할 것 같은 것도 200년후에는 가능할 수도 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Impossible은 하얀 면적으로 시간이 많이 지나도 아예 불가능할 것 같은 영역이다. 예를 들면 우주의 근본적인 물리법칙을 바꿔버리는 것이 필요한 기술들은 먼 미래에도 가능하지 않을거라고 예상하는 사람이 많다. 다만 impossible의 영역 또한 possible이 확대되며 줄어든다. 이러한 가능할 것 같은 범위의 확장은, SF 영화나 문학 작품의 설득력과도 관련있다. 예를 들면 50년 후의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SF작품에 어떻게 봐도 50년내로 도저히 가능할 것 같지 않은것이 나오면 민감한 사람들은 영화를 보기 싫어지는 지경에 이를 수 있다. 이러한 원뿔 모양은, 도표의 제작자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철학에서의 시간에 관련된 원뿔 도표의 원류 중 하나라고 생각되는 베르그송에게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베르그송은 노벨상을 수상한 19세기의 철학자로, 경험, 의식, 시간성에 대해서 깊은 고찰을 보여준 역사적 인물이고, 시간에 대한 다른 관점으로 아인슈타인의 노벨상 수상에 반대했었던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Cone of memory는 베르그송의 저서『물질과 기억』에 등장한 도표인데, 가장 넓은 면적인 AB의 원이 순수 기억이고, 모든 과거의 기억과 경험을 모두 담고 있는 정보의 총량을 의미한다. 즉, 가능한 가장 과거까지 간 기억의 시점부터의 총량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무의식 속에 존재하고 가상virtual이다(컴퓨터 게임에서의 공간을 묘사할때 많이 쓰이는 가상의 개념과 철학의 가상의 개념은 조금 다름). 그 후로 A’B’등 여러 서브섹션들이 있는데, 다른 레벨상에 존재하는 기억들의 모음을 의미한다. 기억들이 더 분명해 질 수록 원의 면적은 점점 줄어드는데, 이는 직접 감각적이나 의식적으로 기억하는 기억들의 수는 기억의 총량 대비 적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즉, 이 서브 섹션들은 현재의 감각상으로 존재하는’과거들이다. 만약 과거의 기억인데 감각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 위치까지는 오지 못하고 AB원에만 머물러 있을 것이다. 이 서브섹션들 또한 현실의 동작 단면과 맞닿아 있지 못하기에 현실은 아닌 가상의 상태이다. 꼭지점인 S는 현실과 접하는 곳으로 즉각적인 현재의 경험을 의미한다. 의식과 현재가 교차하는 곳이고 현재 내가 경험하고 있는 것 그 자체이다. 이러한 베르그송의 cone of memory는 과거에서 현재까지의 개념이며, 이를 현재부터 미래까지의 개념으로 범위를 바꾸어서 응용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위에 제시된 현재부터 미래를 묘사한 도표 또한 그러한 류라고 생각된다.


1. 경우의 도시에 활용된 무용, 사운드, 비주얼 관련 기술 개요
2. 공연 모습
이미 언급 되었던 아트 퓨쳐Art Futures라고 하는 부분은 본 콜렉티브에서의 작가 류필립의 작업 방향을 단적으로 나타내주는 학술적 용어라고 할 수 있는데, 전시물이나 공연물 등이 될 수 있다. 아트 퓨쳐로서의 독자적인 정체성을 형성하도록 균형을 잡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되는데, 작가 류필립 경우의 도시 제작시에 그런 부분을 고려하며 SF도, 미래학도, 스페큘레이티브 디자인도 아닌 순수예술Fine Art적 분위기를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추후의 작품에서도 이러한 기조를 이어가려고 계획중이다. 류필립과 김혜연의 콜렉티브 Momenta는 이러한 맥락에서 아트퓨처Art Futures,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그리고 신체성Coporeality를 주제로 더 많은 작품을 선보일 계획이다.
작품의 미래도시 컨셉과 맥락을 같이하는 또다른 중요한 주제는 인공지능을 모사하는 인간 예술가이다. 이 프로젝트에서 무용수들이 로봇의 원시적인 움직임을 모사하는 안무를 수행한다. 이는 보편적인 방식처럼 기계가 인간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초기 인공지능 시스템에 의지하고, 그것에서 영감을 얻기도 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신체적 변화를 탐구하는 방식이다.
특히 기술 퇴화(Technological Atrophy)는 작품에서 중요한 컨셉으로 등장하는데, 길찾기 알고리즘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특정 능력을 퇴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과거, 호주의 Guugu Yimithirr 족이나 Tzeltal족의 원주민들은 동서남북을 즉각적으로 알 수 있음은 물론 상대적인 방향 지시(왼쪽/오른쪽 등)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절대적 방향으로만 대화를 정도로 뛰어난 방향 감각을 가지고 있었으며, 또한 다른 문화권에 속한 사람들도 농사 짓기 등의 이유로 항상 동서남북을 알고 있는 것이 보편적이었으나, 현대에는 GPS 기술의 발달로 인해 인간의 길찾기 능력이 점차 퇴화하고 있다.
‘경우의 도시’에서는 이런 점이 극대화된 미래를 상상하며, 길찾기 알고리즘인 Learned Heuristic A* 알고리즘을 활용하여 무용수들의 이동 경로를 결정했다. 이들은 각기 다른 모험성(ε parameter)을 적용받아, 각자 다른 개성을 가진 인공지능 에이전트처럼 무대를 돌아다녔다. 무용수의 상체 동작은 초창기 강화학습의 로봇 움직임 등에서 영감을 얻었다. RNN을 활용한, 작가의 입력에 맞춘 응답-마치 재즈의 call and response처럼-을 주는 머신러닝 사운드 시스템과 아주 기초적인 인공지능이라고 할 수 있는 파라메트릭 기법을 활용한 3D 신 까지 모든 것이 기계와 인간의 협업이었으며, 대게 인간이 기계에서 영감을 받아 보조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이 작품의 전반적인 컨셉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작가는 Art Futures의 기조로 AI-punk적 미래들을 그리고, 그것을 관람객들이 미래를 들여다보는 수많은 청진기나 렌즈 중에 하나로 활용하여 영감을 얻는 것을 목표로 하였으며, 한다.
인간은 더이상 주인공의 역할만을 수행할 수 없다. 유사 이래 최초로 다시 충분히 지적인 존재를 만난 인간은, 이제 그 지성이 추월당할 상황에 놓여 있다. 대적자로서 각종 기계 인터페이스에 의지하며 기계의 지시에 따르는, 그를 통해 조연의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하고 있는 인간은 앞으로 어떤 운명에 놓이게 될지 상상해보자.
류필립, 2025.